Victorian England & Modernism paintings
Prettejohn, Elizabeth. 2005. Beauty and Art: 1750-2000. Oxford University Press, USA, July 28.의 요약, 정리
III. Victorian England
Ruskin, Swinburne, Pater
Ruskin, Venetian painting, and Rossetti
러스킨(John Ruskin)의 가장 큰 모순점은 시각적 진리를 미술가가 지닌 기량의 기본적인 기준이라고 여기는 동시에, 미술을 상상력의 산물이나 인간 정신의 발로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러스킨은 미술의 모방적 기능과 표현적 기능 모두를 똑같이 강조하였다. 러스킨은 미술이 단순한 오락이나 취미가 아니기를 바랬다. 그는 미술이 사회적, 도덕적, 정치적인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통합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그는 화면 속의 모든 것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러한 관계를 통해 아주 작은 묘사(소품)까지도 도덕적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이라고 보았다. 윌리엄 헌트(William Holman Hunt)의 작품 <깨어나는 양심 The Awakening Conscience>이 왕립아카데미에서 올바를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러스킨은 스스로 이 작품에 대해 타임즈(The Times)에 글을 썼다. 여기서 그는 화면 안의 모든 표현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관계를 통해 작품이 가지는 화면 속의 이야기와 이를 확장한 미래의 이야기까지 이끌어 내고 있다. 러스킨은 미술평론 혹은 미술과 관련된 일체의 글들이 당대의 일반 대중들에게 미술에 담긴 가치-주로 도덕적인 것들을 올바르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자신이 훌륭한 삽화가이기도 했던 러스킨은 이러한 미술의 방법론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고 이것이 앞서 말한 시각적 진리와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언급했다. 즉 러스킨은 회화의 기술적 완성도와 완성된 회화가 가지는 의미의 전달 모두를 중요시했다.
러스킨이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circle)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라파엘전파는 라파엘(Raphael) 시대 이전의 미술을 부활시킴으로써 당대의 영국 미술을 부활시키고자 했다. 그들은 경험주의와 과학의 발달을 통해 눈에 보이는 사물을 더욱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근대적 사고를 통해 과거의 도상을 화면에 재배치하였으며 이렇게 배치된 실제의 사물 하나하나가 도상으로서의 의미를 잃지 않도록하고자 노력하였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와 동시에 그림에 담겨진 하나의 의미, 그 속에 담겨져 있는 서사를 전달하고자 노력하였다.
러스킨은 베네치아 회화의 형식미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이러한 영향을 통해 회화의 형식미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는 러스킨의 영향으로 베네치아 회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을 연속해서 그리게 된다. 그의 정부였던 Fanny Cornforth를 모델로 그린 여러 작품을 통해 로세티는 라파엘전파의 특징이었던 문학적 소재의 의미전달과는 별개로 회화 자체의 형식미에 더욱 치중한 그림을 그리게 되며 <연인 the beloved>와 같은 작품에서는 그러한 경향이 극에 달하게 된다.
Swinburne, Pater, and art for art’s sake
스윈번(Algernon Swinburne)은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가 쓴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에 대해 최초의 영문 평론을 출판한다. 이 글에서 스윈번은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 즉 유미주의적인 입장을 드러낸다. 이후의 저작에서 스윈번은 러스킨이 주장했던 도덕성과 예술의 연관관계, 과학적 정확성에 입각한 묘사등을 거부하고 예술지상주의적 입장을 더욱 확장하게 된다. 스윈번은 그의 책,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를 통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아름다움이라고 강조한다. 보들레르가 원했던 예술의 역할이 진실과 도덕성 사이의 중재자였다면 스윈번은 진실과 도덕성을 완전히 분리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그는 인간의 모든 활동 중에서 예술만이 온전히 스스로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으며 이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거나 미래의 결과에 의존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의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밝힌 미(美)와도 일치한다.
페이터 또한 스윈번과 마찬가지로 예술과 미적 경험에 가장 높은 가치를 두었으며 예술 자체의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특히 페이터는 예술이 선험적인 영역에서의 경험이 아닌 바로 지금 이곳에서의 긍정적 가치를 제공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경험하는 모든 순간에 최고의 가치를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믿었다. 스윈번과 페이터는 이러한 믿음을 통해 종교적 권위를 거부하였으며 예술에 가장 높은 지위를 부여하였다. 이로써 예술 지상주의는 더욱 확고하고 엄격해졌으며 신성하거나 권위적인 다른 종류의 선택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페이터는 보들레르적인 아름다움이 가진 영원함이나 절대성을 거부하고 의존적이며 한곳에 얽매일 수 없는 측면을 부각시켰다.
The worship of the body
1860년대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누드화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로세티가 그린 <비너스 베르티코디아 Venus Verticordia>는 여성의 나체를 드러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형태를 드러냄과 동시에 화면 안의 상관관계를 강조하여 더욱 에로틱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프레드릭 레이튼 또한 제임스 휘슬러 에드워드 번 존스 또한 누드화를 그렸다. 이러한 누드화들은 모두 고대의 조각에서 가져온 것들이며 이들은 그림 안에서 더할 나위 없는 완결성을 갖추고 있고 때로는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로 비춰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누드화에서 예술지상주의(art for art’s sake)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라는 두 가지 항이 대립한다고 볼 수 있다. 조지 보이스는 화면에 표현되는 인간의 육체가 개성을 획득해야 하며 이전에 본적이 없는 어떠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반면에 레이튼과 같은 작가들은 화면에 담겨 있는 색체와 같이 그림의 가진 아름다움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공존할 수 없는 듯한 이 두 가지 요소들은, 그러나 결코 배타적인 요소들이 아니다. 조지 와츠가 그린 <피그말리온의 아내 The wife of Pygmalion>은 그 좋은 예이다.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이 그림은 대리석이 사람으로 변하는 그 순간을 포착한 듯한 그림이다. 화가가 그린 그림은 그 형식이나 주제 면에 있어서 아름다움 그 자체에 대한 그림이다. 하지만 화면의 조각상은 절대의 아름다움을 통해 생명을 얻고 있으며, 작가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통해 눈앞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실재로서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Form and content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McNiell Whistler)는 미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교육받았으며 이후 오랜 시간을 영국에서 활동하였다. 1867년의 전시회를 통해 그는 <3번 백색교향곡 Symphony in White, No.3>라는 그림을 발표한다. 같은 해에 발표된 레이튼의 Spanish Dancing Girl과 앨버트 무어(Albert Moore)의 음악가들이라는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지만 동시에 전혀 사실적이지 않다. 그림의 장면들이 어떠한 역사적인 실재와 관련을 맺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시간적으로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들이 모두 하나의 그림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음악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무어와 레이튼의 그림은 모두 음악과 관련된 소재를 가지고 있고 휘슬러의 그림은 소재와는 무관하지만 그 제목이 교향곡의 제목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위의 세 작품은 모두 작품의 내적 원리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들은 문학적 소재나 현실에서 벗어나 작품이 스스로의 시각적 방법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내도록 하려 하였다. 휘슬러는 문학적 소재에서 멀어지고자 했던 예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그는 그 방법으로 음악적 방법론을 찾는다. 휘슬러는 <회색과 흑색의 배열:화가의 어머니의 초상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 Portrait of the Painter’s Mother>를 통해 이러한 방법을 실험한다. 그는 그림의 관념적 해석을 거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제목에서 드러나는 어머니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일체의 단어들, 헌신, 사랑, 연민 등을 그림과 유리시키기 위해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라는 제목을 앞에 두었다. 물론 이러한 독법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는 예술지상주의와는 어울리지 않는 해석이다. 반면 형식주의에 입각한 해석을 통해 우리는 화면에 배치된 형태와 색에 집중할 수 있다. 커튼과 벽을 인식할 필요가 없이 색을 통해 충분히 이 그림이 가지는 아름다움에 접근할 수 있다고, 휘슬러는 확신한 것이다.
하지만 휘슬러는 작품을 전시할 때 두 개의 서로 다른 제목을 병치하였고 이는 더 많은 가능성을 가져다 준다. 형식과 내용이 복합되어 작용하고 이를 받아들일 때 더욱 흥미 있고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페이터 또한 휘슬러와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그는 내용과 형식이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고려되어야만 회화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미적 경험을 넘어서는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지도 않았고, 회화에 의해 제기된 질문에 답하려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처럼 열린 형태의 연구가 예술과 다른 학문영역을 연계하려는 노력보다 훨씬 더 폭넓은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결과적으로는 그가 어떠한 종류의 결론을 맺지 않음으로써 예술 스스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더욱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진술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아무런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1877년에 휘슬러의 작품 <금과 흑의 녹턴 Nocturne in Black and Gold>으로 인해 쟁점이 된 미적 기준의 문제는 미학적 논쟁을 공론화시켰으며 결국은 법정에까지 가게 되었다. 러스킨은 번 존스의 작품에 비해 휘슬러의 작품이 형편 없다는 평을 발표했고 작품에 들인 노동을 생각해본다면 번 존스 또한 이에 동의하였다. 하지만 번 존스는 휘슬러의 작품 또한 아름답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 했다. 법정은 러스킨이 휘슬러를 비방하였다고 판결하였다.
결국 예술지상주의는 어떤 작품이 더 아름다운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개개의 작품이 각각의 순간(페이터가 언급했던)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굳이 하나의 작품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IV. Modernism
Fry and Greenburg
마네의 <플리제르베르의 바 A Bar at the Folies-Bergère>는 더 이상 회화를 현실 세계의 복제품으로 남겨두지 않으려 하며 이는 스스로 거울상이기를 포기하려는 행위이다. 마네는 아름다움이 더 이상 최고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 모더니즘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다. 로저 프라이(Roger Fry)는 당대의 프랑스 미술을 보여주는 역사적 이정표로 보았다. 후기인상주의라 이름붙인 일련의 전시회를 통해 프라이는 20세기 미술이 시작되는 그곳에 모더니티의 표식을 붙였다. 예술은 이제 관람객을 놀라게 하거나 내쫓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Discarding beauty
프라이에게 아름다움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단어이다. 프라이는 아름다움(미:beauty)라는 단어가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기호에 따른 감각적 판단” 이 곧 아름다움(beauty)라고 보았다. 그는 또한 일반 사람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는 미적 취향보다 성적 취향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생각하였다. 프라이와 벨(Clive Bell)은 칸트의 합의가능한(agreeable)이라는 단어 대신에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을 반대했다. 그들은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완곡하고 부드러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대다수의 평론가와 예술가들의 목표는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거부하는 것이었으며 미국의 예술가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은 현대예술의 동인(動因)이 아름다움을 파괴하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아름다움이라는 단어가 사라져가는 현상은 단순이 단어의 사용에서 오는 혼란 때문이라기보다는 미학의 함의 자체가 변화하려는 징후로 바라보아야 한다. 20세기에 들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무엇이 아름다운가?“ 라는 물음보다 “무엇이 예술인가?” 라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프라이와 벨은 미학적 경험을 여타의 예술적 경험과 분리시키고 미학적 대상들 사이의 위계적 차이를 재정립하였으며 무엇보다 미학적 반응 자체를 대상의 순수한 형식적 특질에 국한시켰다.
Fry’s formalism
초기 프라이의 글들은 조토의 그림에 대한 연작이었다. 1920년 <디자인과 시각 Vision and Design>에 실린 글에서 프라이는 기존의 종교적 주제에 대한 접근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조토 회화의 형식적인 면에 관하여 글을 쓰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그는 일체의 주제적인 접근이나 극적인 대상에 대한 접근이 없는 상태에서 형식에 대한 반응만으로 작품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프라이는 지오토의 <피에타 Pietà>에 나타난 형식적 완결성이 작품 자체의 정서적이며 극적인 표현성과 매우 잘 결합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또한 그는 조토의 회화가 가진 심오한 내적 정서가 세련된 양식을 통해 더욱 깊은 감동을 준다는 것 또한 발견한다.
이러한 형식주의에 기반한 접근을 통해 프라이는 기독교에 대해 지식이 없는 다른 관람객 또한 작품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을 발견한다. 프라이는 또한 형식에 대한 접근이 단순히 그 자체로서 가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내부의 극적 전개와 관람객의 감정 이입,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련된 생각을 도출하는데 있어서 매우 훌륭하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인상주의 회화에 대한 프라이의 가장 큰 불만은 인상주의 회화 대부분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와 달리 디자인적인 우수함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반면 세잔(Paul Cézanne)은 단순한 형태를 통해 프라이가 추구하는 미학적 완결성을 획득하고 있었으며 그가 과거에 문제 삼았던 주제의 결여는 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프라이의 기준에 있어서 세잔과 후기인상주의 작가들은 거울상으로서 현실세계의 아름다움을 흉내 내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회화 그 자체를 창조하고 있었다.
프라이에게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의 두 가지 용법은 하나,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아름다움이거나 둘, 예술작품 속에 드러나는 고유의 가치를 지칭하는 것이다. 세잔의 <자드부펭의 수영장 The Pool at the Jas de Bouffan>은 그 좋은 예인데 화면 안의 색채와 선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관계가 대단한 조형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런 것들이 관객들을 심오한 감동의 세계로 이끌기 때문이다. 프라이는 이러한 형식주의의 방법론을 당대의 미술에만 적용하지 않고 모든 시공간의 예술작품의 적용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러한 프라이의 방법이 영국 상류사회의 무의식적인 편견을 반영하는 것 또한 사실이며 빙켈만이나 다른 역사들이 발견해낸 사실들을 희생시키기도 한다.
From disinterest to ‘aesthetic emotion’
프라이의 형식주의적 방법론은 칸트가 말한 무관심(disinterest)의 납득할만한 번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형식주의 방법론을 통해서 바라보는 동안은 일체의 개인적 기호나 선험지식과 무관하게 아무런 조건 없이 작품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관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예술, 혹은 예술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초원에 서 있는 야생의 황소를 보는 것은 쉽지만 실생활에서 매일 움직이는 탓에 황소를 거의 알아채지 못하듯, 대상을 예술적인 무엇으로 간주할 때에만 우리는 무관심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형식주의적 태도는 개별적인 종류에 더 쉽게 적용될 수 있는 특질이 있다. 동시에 모든 종류의 예술에 대해 동등한 규준으로 적용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르게 된다.
영국에서와 달리 프랑스의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 또한 이러한 예술의 이러한 형식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회화가 우리에게 인식되기 이전에는 평면에 펼쳐진 색의 체계라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다양한 작가의 여러 실험을 거치는 가운데 1913년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작품에 이르게 되어 프라이는 추상회화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며 이를 가르켜 정제된 시각적 음악(pure visual music)이라고 표현하였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 1917년에 선택한 소변기(<샘 Fountain>)는 예술적 대상과 여타 대상에 대한 차이점을 재정립하게 해주었다. 뒤샹은 자신이 소변기를 선택했음을 강조하면서 서구 사회의 오랜 미학적 전통이 가진 특질을 보여주었다. 뒤샹은 매우 재기 넘치고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서구의 미학적 전통 전체를 부정하였으며 예술의 한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미의 개념 또한 논리적 법칙에 방해 받지 않고 순수하게 취향의 선택에 결정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Clement Greenberg and American abstraction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칸트가 말한 취향의 판단이 상대적이거나(칸트가 주관적이라고 표현했던 것) 보편 타당한(칸트에 의하면 공통적인 것)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예술작품과 그렇지 않은 것들 구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린버그에게 있어 브라크(Georges Braque)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The Saturday Evening Post)에 실린 그림이 가진 차이는, 브라크의 작품이 예술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반면에 노먼 록웰(Normal Rockwell)이 그린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표지는 상업주의와 미국적 가치들에 의해 오염되었다는 것이다. 그린버그는 유럽 미술의 실수가 17세기 중반 문학에서 그 소재를 가져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회화와 조각에 있어 문학이 지배적인 예술이 되면서 유럽 미술은 고유의 수단을 상실하고 문학적 가치만을 흉내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린버그는 그의 저서 <새로운 라오콘을 위하여 Towards a Newer Laocoon>에서 프라이의 형식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켜 추상예술의 집중한다. 그는 현대미술이 점진적으로 외부에서 참조 가능한 가치를 제거해 나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예술 작품은 내적으로 완성되어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의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들을 스스로 제거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예술은 그 매체와 재료에 있어서도 독창성을 주장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주장은 프라이의 design이나 벨의 significant form이라는 개념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명확한 것이다. 환영을 만들어내기 보다 회화 본연의 평면성을 드러낸 마네의 그림을 향해 최초의 현대회화라고 한 것 또한 이러한 맥락이다.
그린버그 역시 벨이나 프라이가 그랬듯이 자신의 방법론을 벗어나면 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그린버그는 이러한 우려와 기존의 미적 체계와 일치하지 않는 불연속성이 제기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더니즘 회화가 새로운 기반 위에 존재하지만 실제 재료에 있어서 그동안의 회화가 감추고자 했던 것들을 드러내고자 할 뿐임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모더니즘 회화가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며 끊임없이 모더니즘 회화가 어떤 형태로 막을 내리게 될지라도 결코 과거 속으로 회화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린버그는 개념미술을 바라보는 것에 있어 형식주의적 방법론은 매우 가치 있는 교육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방법론은 하나의 연습이며 개념미술이 아닌 예술에 대해 우리의 시각을 단련시켜 준다. 하나의 시각에 고립되지만 않는다면, 아름다움은 우리에게 형식주의나 예술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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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
- Monday, March 13th, 2006 at 4:33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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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 vizualizer
- Category:
- theory
- Tags:
- modernism, painting, vicrorian eng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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