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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multiplicité &#187; 솔라리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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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A Penetration into the Retina, and Beyond.</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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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he Boundry between Human and Machine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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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3 Jun 2004 17:29:16 +0000</pubDate>
		<dc:creator>vizualizer</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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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When the boundry between human and machines has infinitely blurred, humans have forgotten that they are umans.]]></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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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n class="Z3988" title="ctx_ver=Z39.88-2004&amp;rft_val_fmt=info%3Aofi%2Ffmt%3Akev%3Amtx%3Adc&amp;rfr_id=info%3Asid%2Focoins.info%3Agenerator&amp;rft.title=The+Boundry+between+Human+and+Machines&amp;rft.aulast=Kim&amp;rft.aufirst=Yonggeun&amp;rft.subject=look+and+feel&amp;rft.source=multiplicit%C3%A9&amp;rft.date=2004-06-24&amp;rft.type=blogPost&amp;rft.format=text&amp;rft.identifier=http://vizualizer.com/multiplicity/look-and-feel/the-boundry-between-human-and-machines/&amp;rft.language=English"></span>
<abbr class="unapi-id" title=""><!-- &nbsp; --></abbr>
<p>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중에서 수몰된 박물관 장면에 나오는 소박한, 그러나 파괴력 있는 전투씬은 서구의 망가마니아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비록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무겁고 불친철하기 짝이 없는 영상적 결과물은 시로우 마사무네의 팬들에게 노여움을 샀겠지만 말이다.<br />
<span id="more-405"></span><br />
수몰된 박물관에서 벌어지는 전투신에서 가장 큰 시각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생명의 나무이다.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이 나무가 흔히들 말하는 세피로트의 나무라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와 다르다. 이 나무는 <a href="http://100.naver.com/100.php?id=189026" target="_blank">Ernst Haeckel</a>이라는 사람이 1874년에 그린 <a href="http://genome.imb-jena.de/stammbaum.html" target="_blank">계통적 수형도</a>로서 계통학에 대한 시각적 표현이라고 한다. 계통학이라 함은 식물의 진화과정 전체를 조망함으로서 종속과목의 분류과정을 시간적 과정에 따라 재배열하는 학문이다. 대략의 자료를 통해 알아본 헤켈은 다윈의 책 &#8216;종의 기원&#8217;의 영향을 받아 독일에서 그 진화론을 전파한 사람이다. 그는 독일 Jena 대학에서 비교 해부학(comparative anatomy)과 동물학을 연구하였다.</p>
<p><img alt="genealogy-tree.gif" src="http://vizualizer.com/eritique/2004/06/24/genealogy-tree.gif" width="400" height="701" border="0" class="insert"/></p>
<p>기본적으로 수형도, 즉 나무 모양의 계통도를 그리는 이유는 그 근원이 하나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잔뿌리가 줄기로 올라가는 길목은 반드시 하나여야 하기에 이는 사상적으로 일원을 뒷받침하는 좋은 도상학적 예시가 된다. 헤켈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의 Genealogy tree라는 그림은 결국 생물의 발생이 하나의 기원에서 그 시작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다윈이나 기타 당대의 여러 실험들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믿음이다. 일례로 플라스크에 스프를 가열하여 외부공기와 차단한 후 방치한 실험은 이러한 유물론적 일원론을 기저에 깔고 있다 하겠다. 그렇다면 오시이 마모루는 왜 그 유명한 <a href="http://preview.britannica.co.kr/bol/topic.asp?article_id=b12s1643a" target="_blank">세피로트</a>를 끌어오는 대신 헤켈의 그림을 가져온 것일까. <a href="http://100.naver.com/100.php?id=150184" target="_blank">카발라</a>와 깊은 연관을 가지는 세피로트는 사유의 체계에 대한 일원론적 접근이 낳은 결과물이다. 세피로트는 하나님(무한, 혹은 엔 소프)이 드러내는 열 가지 속성을 나무의 형태로 그려놓은 것이다. 여기서 드러내는 열가지 속성을 통해 인간은 무한(하나님)으로 접근하는 통로를 얻게 되는데 이 시각적 상징의 특성 탓에 어느 세피라(세피로트의 단수형)로 접근하던지 엔 소프, 즉 무한으로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원론적 사고는 유대의 비전인 카발라와 일치하는 것이며 이후 기독교의 교리에도 중요한 영향을 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엔 소프라는 무한의 존재를 통해 모든 지적 결과물을 하나의 전체로 통합하는 과정이라 하겠으며 이러한 일원론적인 사유체계(즉 형이상학적인 하나의 계통도)를 완성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 곧 세피로트였음을 알 수 있다.</p>
<p>이와 비교해 볼 때 헤켈의 계통학적 수형도(樹形圖)는 생물학적 일원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시각적 결과물이다. 헤켈의 수형도는 생물이 발생한 시간 순서에 따라 고생물을 가장 아래에 위치시키고 가장 윗부분에 인간(hominis)을 위치시킨다. 이처럼 간편한 일원론은, 그러나 바로 마모루에 의해 공격당한다. 과연 그 정점이 인간일까?라는 의미심장한 물음으로 말이다.</p>
<p>이미 관련글에서(<a href="http://blog.naver.com/cpddd.do?Redirect=Log&#038;logNo=40003015266" target="_blank">woony&#8217;s home에 실린 생명의 나무와 진화</a>) 친절히 설명된 것과 같이 공각기동대에 나오는 인형사와 쿠사나기의 대화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내용을 암시한다. &#8216;생명의 단종화에 따른 위협을 피해 돌연변이를 낳기 위하여 융합한다&#8217;라고 하는 인형사의 언질은 바로 새로운 종의 탄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시 되는 것은 이처럼 융합의 과정에 의해 태어난 생명체가 과연 개체로서 존재하는가라는 점이다. </p>
<p><a href="http://wiki.sfreaders.org/StanislawLem" target="_blank">스타니스와프 램</a>의 소설 &#8216;<a href="http://www.bookmir.com/detail.asp?ID=1091894" target="_blank">솔라리스</a>&#8216;는 기존의 모든 과학질서를 뒤집는 새로운 혹은 상식 밖의 행성의 출현에 당혹해 하는 인류와 개인의 대응방식을 소재로 한 공상과학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새로운 행성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 가운데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p>
<div class="entryBodyQuotation">솔라리스의 고대 주민들의 육체에서 발생한 이상형질이 돌연변이를 일으킨 결과 생겨난 것이며, 그 바다가 결국 솔라리스 인들을 절멸시키고 그 시체를 녹여 영원한 생명을 가진 초세포 조직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div>
<p>결국 개체간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표현이 되겠는데, 이러한 예는 의외로 공각기동대에도 나온다. 공각기동대의 TV시리즈 1기인 SAC(Stand Alone Complex)에는 타치코마가 개성을 획득하기 전 과정으로 개체의 기억이 병렬화되며 개성이 없어지는 과정을 전제하고 있다. 즉 단종화 과정이 선행하고 이후 개성을 획득하는 것이다.</p>
<p>김준양은 90년대 후반 월간 키노에 기고한 글에서 공각기동대가 &#8216;권력과 조직에 대한 고려&#8217;를 배재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체와 집단의 분류는 일면 생물학적 관점에 기인한 것이다. 즉 사회의 구조를 기능적으로 파악하고 세포적 존재로서 인간을 파악했기에 가능했던 질문이다.</p>
<p>하지만, 개체를 개체라고 부를 수 있는 필연적 이유가 개성에서 비롯된다는 전제하에, 정보가 병렬화되고 단종화(單種化:monoculturization)에 가까운 기억의 동일화, 개체의 몰개성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은 개체로서의 진화를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개성의 획득을 실패하는 생물군에게 있어서 종으로서의 존속은 개체수의 절멸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 &#8216;권력과 조직에 대한 고려 부재&#8217; 라는 김준양의 지적은 때문에 공각기동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지적이 된다. 김준양이 지적한 &#8216;권력과 조직에 대한 고려&#8217; 는 개체와 집단, 개성적 자아와 규격화된 개인을 요구하는 획일적 집단 사이의 갈등이 되는 셈인데, 오시이의 입장에서 볼 때 정보화된 사회는 개인의 개성을 증명할 기술적인 방법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보화된 사회는 개인의 경험을 끊임없이 복제하고,재생산하므로 개성이라는 단어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개인을 개인으로서 규정해야할 수 있는 당위성 또한 사라지게 것이다. 사회는 개성있는 개인에 의해 탈주하기도 하고 사회전체의 안정이 위협받기도 하는 것이지만, 그와같은 고유한 개인, 혹은 탈규범적 그룹은 존재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오시이의 기준에서 그러한 일탈적 존재들은 이미 사회혼란의 가능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오히려 오시이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생명에 관한 정의이다.</p>
<p>생명다움, 인간다움. 이전 세기에 있어 인간다움은 기억 혹은 경험의 고유화였다. 기억하는 존재만이 인간으로서 존중받았다. 고유한 기억이 곧 개성과 직결되었고 기억의 흔적은 미래의 행동에 나침반이라는 지표가 되었다. 하지만 기억이 정보로 환원되고 그 정보가 물리적으로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인간다움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이 인간다운 것인가? 기억이 고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인간답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하는가? 그러한 질문은 기계와 인간이 경계가 무너지는 그 지점에서 가장 절박하게 당신의 가슴을 치고 올라올 것이다. 적어도 오시이 마모루는 그렇게 믿고 있는 듯 하다.</p>
<div class="entryBodyQuotation">When the boundry between human and machines has infinitely blurred, humans have forgotten that they are humans.</p>
<p> &#8211; <a href="http://vizualizer.com/eritique/000113.html" target="_blank">Innocence</a>, 극장판 예고편 중에서.</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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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ach, The Goldberg Variations, Glenn Gould</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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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4 Jan 2004 13:27:2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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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나는 청중과 예술가라는 권력 질서에 반대한다. 청중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 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 말하자만 나는 맥루한 개념 같은 '창의적인 청중'이 필요하다. 콘서트는 청중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콘서트가 과거의 것이라면 레코딩은 미래의 것이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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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29,0" width="400" height="370" class="insert"><param name="movie" value="http://vizualizer.com/eritique/2004/01/04/player.swf"><param name="quality" value="high"><param name="wmode" value="transparent"><pram name="flashvars" value="flv=http://vizualizer.com/eritique/2004/01/04/goldberg.flv"><embed src="http://vizualizer.com/eritique/2004/01/04/player.swf" quality="high" pluginspage="http://www.macromedia.com/go/getflashplayer"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00" height="370" class="insert" wmode="transparent" flashvars="flv=http://vizualizer.com/eritique/2004/01/04/goldberg.flv"></embed></object></p>
<p>Bach의 Goldberg Variations 중에서 마지막 Aria Da Capo입니다. 연주는 Glenn Gould라는 캐나다의 피아니스트이구요. 이 사람은 일생 동안 Goldberg Variations가 담긴 두장의 앨범을 냈습니다. 그가 죽기 전까지 1955년 데뷔 레코딩으로 한 번, 1982년의 마지막 레코딩이 그것이죠. 얼마 전에는 캐나다 국영방송에서 연주했던 미공개음원이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지독히도 연주회를 싫어해서 만년에는 레코딩에만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연주회에서의 실수를 두려워한다는 비아냥까지 들었지요. 하지만 글렌 굴드는 확고했습니다.<br />
<span id="more-322"></span></p>
<blockquote>
<p class="entryBodyQuotation">In a recording an artist can be encouraged to give a more immediately intense performance than he could under concert or theatre conditions.</p>
<p class="entryBodyQuotation">나는 청중과 예술가라는 권력 질서에 반대한다. 청중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 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 말하자만 나는 맥루한 개념 같은 &#8216;창의적인 청중&#8217;이 필요하다. 콘서트는 청중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콘서트가 과거의 것이라면 레코딩은 미래의 것이다.</p>
</blockquote>
<p>이렇게 말할 정도니까요. 20세기 초반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레코딩에 관해 크게 두 종류의 반응을 가졌다고 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반기며 그 자체를 즐기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콘서트를 더 중시하고 일체의 레코딩을 남기지 않으려했던 사람들도 있었지요. 글렌 굴드는 대단한 레코딩 옹호자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p>
<p>굴드는 자신의 생애 첫 레코딩으로 바흐의 골드베르그를 선택했으며 마지막 녹음 또한 같은 곡이었습니다. 굴드가 유독 바흐와 자주 연결되는 것도 그런 이유지요. 그가 남긴 레코딩만 보더라도 바흐의 곡들이 꽤 많은 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했던 음악가는 바흐보다는 다른 작곡가였다고 하죠. 그리그였나? . . ㅡ ㅡ;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아무튼 바흐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p>
<p>이곡을 처음 알게된 건 아마 중학교 때였을 겁니다. 집에 클래식 음악을 해설해 놓은 책이 한권 있었는데 아쉽게도 집에 전축이나 레코드 판 같은 것이 없어서 책에 나온 곡들이 어떤 곡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죠. 그러다 우연히 동네 시장통 초입에 있는 레코드 점에서 책에서 보았던 바로 이곡을 본 겁니다. 그때야 작곡가도 잘 모르고 겨우 알파벳이 집에 있는 책에서 본 것과 비슷한 걸 산 거지요. 중학교 때 테입을 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 같은 앨범의 시디를 샀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키스 자렛을 비롯해서 꽤나 많은 연주가들이 이 곡을 연주했더군요. 집에도 안드레이 가브릴로프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1955년도에 녹음한 골드베르그도 구해서 들어보았지요. 나중에는 캐나다 국영방송의 음원도 들어볼 참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듣게 되는 건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그더군요. 고등학교 때도 마음이 복잡하면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나 이곡을 듣고는 했으니까요.</p>
<p><a href="http://vizualizer.com/eritique/2004/01/04/gouldCD.jpg"  rel="lightbox[roadtrip]"><img class="insert" src="http://vizualizer.com/eritique/2004/01/04/gouldCD-thumb.jpg" border="0" alt="Bach, Fughettas and Fugues, Glenn Gould(Click to enlarge!)" width="400" height="266" /></a><br />
* 위 사진은 97년에 소니에서 발매된 오리지날 자켓 컬렉션 중의 하나입니다. 케이스는 종이로 되어있고 디자인 또한 LP발매 당시와 동일하게 만들어졌습니다.</p>
<p>바흐의 다른 곡들이 그렇지만 이 곡도 대단히 지적인 곡입니다. 푸가 작법이라던가 평균율 클라비어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요. 1731년 &lt;쳄발로 연습곡집&gt;의 마지막에 &#8216;다양한 변주의 아리아&#8217;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742년에 온전한 제목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으로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애초에 카이저링크 백작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 바흐가 선물한 곡으로 많이 알려졌죠. 골드베르그는 카이저링크 백작을 위해 매일밤 이곡을 연주한 바흐의 제자 비르투오소 테오필루스 골트베르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네요.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의 콜럼비아 심포니와 글렌 굴드가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이나 레너드 로즈와 함께 연주한 비올라 다 감바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도 굉장히 좋은 곡이지만, 글쎄요. 역시 글렌 굴드가 연주한 이 골드베르크의 마지막 아리아는 뭐라 표현할 수가 없는 울림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비디오의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속으로 깊이 웅크리는 듯한 굴드의 모습은 숙연함을 느끼게 하죠. 바흐의 곡을 연주한 다른 연주들이 곡의 지적이고 합리적인 질서를 강조한 연주라면 글렌 굴드의 연주는 그 질서 안에서 어떤 정서적 울림을 끄집어냅니다. 그래서 그 딱딱한 푸가곡마저도 굴드를 통과하면 또 다른 감정의 분출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아직까지 글렌 굴드의 여러 연주를 즐겨듣는 건 그런 이유인가 봅니다.</p>
<p>*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lt;<a href="http://www.imdb.com/title/tt0307479/">솔라리스(Solaris, 2002)</a>&gt;를 보시면 혹성 탐사선에서 울려퍼지는 골드베르크 협주곡을 만날 수 있습니다.</p>
<hr /><a href="http://www.nlc-bnc.ca/glenngould/" target="_blank">캐나다 국립도서관의 글렌 굴드 홈페이지</a><br />
<a href="http://glenngould.com/" target="_blank">소니 클래식의 글렌 굴드 공식 홈페이지</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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