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창백한 그 남자는 치료실에 들어서자마자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납으로 만든 투구를 보기 좋게 눌러쓴 그 남자는 여의사를 향해 싱긋 웃어보였다. 전기톱을 들고 밖에서 기다리던 간호사는 덜컥거리는 톱날을 매만지며 여기저기 기름을 치고 있었다. 매마른 고목처럼 서 있던, 검은 뿔테 안경의 여의사는 전자계산기의 숫자판을 끊임없이 두드렸다. 커다란 전자렌지 같은 치료실 안에서 남자는 자신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가벼운 수전증이 찾아왔다. 간호사는 샘플의 채취를 위해 액화질소장치를 옮겨왔다. 이윽고 검은 뿔테의 여의사는 전자계산기를 한켠에 치워두고 남자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는 손목시계를 잠시 쳐다봤다. 2분이 지났고 10여초가 더 미끄러지려는 찰라였다. 푸른 빛의 창백한 조명이 치료실에 나뒹굴었다. 여의사의 검은 뿔테가 역광을 받아 역삼각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간호사가 끌고 다니는 전기톱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남자는 자신의 눈 주위에 질기게 엉겨있는 눈꼽을 떼어냈다. 여의사는 책상 위에 놓인 몇 가지 서류를 뒤적였다. 작은 메모지 한 장이 떨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치료실 밖이 조금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몇 번인가 사진기 셔터소리가 들렸고 이내 둔탁한 파열음이 들렸다. 남자는 문득 어머니가 해주시던 몇 가지인가의 음식을 생각했다. 아마 그 가운데는 소의 뼈 중에서도 연골 부위만를 우려낸 국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무언가 물컹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인정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디선가 동전이 떨어졌다.
글쎄요, 뭐 어쩔 수 없지요. 나는,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의사는 몇가지의 단백질 덩어리를 용기에 집어 넣었고, 간호사는 설겆이를 하듯 여러 색깔의 체액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여의사는 점성의 붉은 액체가 잔뜩 묻어 있는 가운을 겨우 벗어 던지고 여기 저기 납덩어리가 늘어붙어 있는 전기톱을 힐긋 쳐다보았다. 고가의 레이저 장비는 내년에나 수급될 것이다. 치료실 바닥으로 흐르는 약산성의 액체가 붉은 점액질과 회백질의 단백질 덩어리, 으깨진 칼슘조각 따위를 천천히 녹이고 있었다. 간호사가 외부로 통하는 전화를 통해 몇 마디를 내뱉었고 검은 가운의 남자 몇 명이 치료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여의사는 벗어두었던 안경을 겨우 찾아쓰고 책상 위에 놓인 서류의 여백을 채워갔다. 언제나 그러하듯 서류의 오른쪽 위켠에 미리 준비된 스티커와 환자의 고유번호를 붙였다. 그녀는 업무평가를 위한 몇 가지 항목에 동그라미를 그렸고 병명과 처리결과를 적어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치료절차를 마무리지었다.
agoraphobic, cleared.
마침 그때는 10여분이 지나고 8초가 더 미끄러지려는 찰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