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 기형도, <10월>.
하나, 스스로 결정 가능한 것이 부족해질수록, 인간은 불행해진다.
둘, 어떤 이들은 겨우 살아남고, 또 다른 이들은 가까스로 죽음과 조우한다.
셋, 인간은 먹는 만큼 망각한다.
그리고, 만질 수 없는 부품이 고장난 기계 하나가 주인을 위해 끊임없이 떠들고 움직였다. 주인은 한평생 기계가 고장난 것을 알지 못 했고 기계는 자신이 고장났다는 사실을 망각해버렸다. 주인은 즐겁게 죽었고, 기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인을 기억해낼 수 없었다. 문득 기계는 동작을 멈추었다.
어떤 것도 그 기계의 쾌유를 바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