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8, 2005

검은 수염

달이 뜨고 있었다. 검은 수염은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인간의 아이들처럼 단지 반짝거릴 뿐인 별들이 빛을 머금고 있었다. 바람은 차가워지고 있었고 구름은 몸집을 키우며 갈라지는 기침을 내뱉고 있었다. 다 말라버린 땅 위에 바람이 한 올 한 올 그림자를 새겨놓았다. 벌써 오래 전에 애꾸가 되어버린 검은 수염은 흙과 바람의 흔적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인간들이 허무라고 부르는 그런 상황에 조금은 가까워진 것인지도 모른다. 반쪽만한 어금니를 가지고 우두머리에 올랐던 검은 수염은 벌써 꽃잎보다 많은 우기를 버텨내고 있었다. 다음이나 그 다음의 우기가 그의 윤기나는 털이 빗물에 젖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바람이 거세어 지고 사위가 반짝거렸다. 어금니마저 잘려나간 그가 버텨낼 수 있었던 하나의 이유는 무모함이었다. 그는 두려움이 없었다. 마치 인간이라도 되려는 듯 그는 하늘의 움직임에 달리 동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무관심에서 비롯된 망각이었다. 지금 사위를 밝히는 저 빛 마저도 그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그 빛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 그 무엇은 검은 수염에게 기회가 될 것인가 재앙이 될 것인가. 그것이 그의 관심사일 뿐이다.

은하수가 길어지는 밤에 그는 끈을 꺼내어 놓는다. 멀리 얼어붙은 땅의 또 다른 애꾸에게 그 끈을 잇기 위함이다. 거미줄처럼 넘실거리는 얇은 끈을 타고 검은 수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얼음의 둔덕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하얀 털의 알 수 없는 발자국을 가진 그 녀석 또한 내가 태어난 이 땅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고는 했다. 지워져버린 강의 흔적처럼, 그들은 겨우 존재하고 있었다.

검은 수염은 별을 바라보며, 얼음의 대지를 유영하며, 바람의 손톱에 그르렁거리며 무언가를 떠올렸다.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검은 수염은 별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별이 그의 의지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별이 그의 의지를 따라 자리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얕은 호수를 닮은, 그 호수에 비친 자신의 눈빛을 닮은 하나의 별을 보았다.

검은 수염은 숨쉬기 시작한 후 처음으로, 그의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숨쉬는 것과 숨쉬지 않는 것들이, 자신의 흐릿한 안구에 비치는 그 모습 그대로, 곰팡이와 썩은 물에도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견고하고 딱딱한 얼음처럼 오래 존재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문득,
하얀 섬광이 비명처럼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Posted by vizualizer at 02:46 AM | Comments (0) |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