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02, 2004

向左走. 向右走(Turn Left, Turn Right)

이 영화를 처음 보게 된 건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양영기 때문입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양영기는 홍콩에서 꽤 알려진 여배우입니다. 정이건과의 정분질로도 유명하고요.(아직 사귀나?)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많은 영화에 출연했지요. 재밌는 건 출연했던 대부분의 영화가 현대물이라는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흔히 말하는 고전물은 거의 없거든요. 관지림이나 장백지와 같은 다른 배우들이 고전물을 많이 찍은 것에 비하면 양영기는 필모그래피에서 고전물을 찾기가 어렵습니다.(얼마전 장백지, 유덕화, 황추생은 <천방지축 Cat and mouse>라는 영화를 찍기도 했습니다. 포청천과 전조를 주인공으로 하는 고전물이지요. 무간도 확장판?) 저는 예전부터 양영기 팬이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홍콩의 channe V 에서였는데, 왜 그런 인상 있잖아요. 유명인처럼 특별히 예쁘지 않고 친근한 그런 거요. 아무튼 제가 가장 좋아하는 두 배우가 나오니 나름대로 기대 꽤나 했습니다. 금성무도 제가 참 좋아하는 배우니까요, 음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turn left turn right illustration by Jimmy liao(click to enlarge)

이 영화의 원작은 대만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 Jimmy Liao의 동화(?)입니다. 내용은 간단하죠. 멜로에요. 오래전 우연히 만나게 된 남녀가 시간이 흘러 갖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 사랑을 꽃피운다. 딱 한 문장입니다. 머 대충 감이 오지 않으십니까? 세상 대부분의 사랑얘기는 다 여기에 온갖 양념을 집어넣은 확장판 같은 거죠. 머 적어도 제 기준에는 그렇다는 겁니다. 아 자세한 줄거리는 여기에서 보시는 게 더 좋을 겁니다. 나름대로 자세하게 나와있지요.

turn left turn right by jimmy01.jpg

사실 사랑얘기라는 게 좀 그래요. 영화를 보고 나면 도무지 할 말이 없거든요. 별로 드는 생각도 없고. 머 고민거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괜히 행복한 주인공들의 모습에 심술 나서 담배나 피우지 않으면 감지덕지라구요. 아마 남녀의 사랑얘기를 보면서 풀어놓을 썰이 생길 때는 그 끝이 행복하지 않을 때일걸요.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같은 영화는 사실 할 얘기가 많거든요. 머 결혼생활의 불안함이라던가 중산층의 위선 같은 거, 당대 미국 사회의 문제 등등. 헤어진 남녀에 대한 얘기는 수많은 얘기거리를 던져주죠. 그런데 왜 행복한 사랑얘기는 별로 할 얘기가 없을까요? 특히나 그것이 평범한 남녀의 사랑얘기라면 정말 끝장이죠. 그렇게 따져보면 이 영화는 정말 할 얘기가 없어요. 머 가난한 음악가와 번역을 업으로 하는 문학전공자의 얘기라는 건 너무 전형적이잖아요. <금지옥엽> 처럼 성적인 유머도 없고 <무간도3; 종극무간>처럼 극적인 긴장 사이에 놓인 남녀의 사랑도 아니구요. 이렇게 얘기하니 제가 이 영화를 되게 싫어하나보다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구요. 전 이 영화 좋아해요. 꽤 많이요. 유치한 별점놀이를 해도 3개 이상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딱히 얘기할 게 없어요. 왜 그럴까요. 거 참.

turn left turn right by jimmy02.jpg

그럼 작가 얘기를 해 볼까요?
기사를 대충 찾아보니 작가가 대단한 인기를 얻었더군요. 아마존에 있는 서평을 봐도 대단한 호평들 뿐입니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부터 타이완에 사는 사람들까지. 개인적인 취향에는 별로 안 맞지만 이 사람이 상당한 상업적 매력을 갖춘 것만은 확실합니다. 일단 20대 중반 여성층에게만큼은 확실히 어필할 수 있는 줄거리인데다 그림의 스타일 또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정교한 느낌을 주더군요. 색감은 꽤나 화려하구요. 물론 이건 이 영화만을 봤을 때 얘기지만 작가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한 가지 스타일을 양산하기 쉬운 법이죠. 아사다 지로의 글들이 대부분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도 그런 대중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이 작가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Turn Left, Turn Right 외에도 이미 정이건, 임가흔 주연의 Landscape(戀之風景)라는 영화가 Jimmy Liao의 그림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사들이 그의 모든 작품 판권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봐서는 꽤나 상업적 폭발력을 지녔다고 봐야죠. 지금도 국내의 몇몇 블로그에서 이 사람의 그림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국내에서도 꽤나 대중적 인기를 누릴 것 같더군요. 중화권에서는 이미 이 영화의 OST 뿐만이 아니라 이 책만을 위한 일종의 송트랙CD까지 발매되어 있습니다. <매트릭스> 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원소스, 멀티유즈라는 전략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지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음악들도 흠잡을 곳이 없지만 이 송트랙 앨범 또한 대단히 충실합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여러 곡들이 들어 있지요. 영화 <아멜리에>의 사운드 트랙으로 유명한 Yann Tiersen을 중심으로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 피아졸라(Piazolla)의 Libertango, 글렌 굴드(Glenn Gould)가 연주하는 Goldberg Variations 까지. 대단한 폭을 자랑하면서도 감수성과 품위를 놓치지 않는 컬렉션이지요.

turn left turn right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오픈시네마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사실 영화 자체의 흥행성이라던가 재미라는 부분에서는 딱히 좋은 점이 보이지 않습니다. 특별히 매끈한 스토리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니까요. 잘 다듬었다고 하기에는 어딘가 성기고, 사실적이라고 하기에는 후반부의 비약이 너무 심하지요. 인물들이 특별히 재기 넘친다거나 개성이 강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이 영화는 그러한 지적에 대해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 겁니다. 모두가 '인연'이라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확실히 인연이란 이 영화에 나온 것처럼 말도 안 되고 황당하며 억지스런 경우를 순식간에 뒤덮어버립니다. 하지만 정말 인연이란 한 마디 때문에 영화에서처럼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기까지 한다는 건, 너무 억지라구요.

* 음악을 맡았던 Yann Tiersen은 얼마 전 개봉했던 <굿바이, 레닌>에서도 음악을 맡았더군요. 두 영화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의 오픈시네마 부문에 초청되었습니다.


http://blog.hanmir.com/marlais의 해당 엔트리
관련 음악등을 다운받을 수 있는 자료실(중문)
수요저널의 작품 소개글
www.jimmyspa.com에 소개된 SongTrack CD : A Chance of Sunshine

Posted by vizualizer at 11:46 PM | Comments (1) |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