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04, 2004

Bach, The Goldberg Variations, Glenn Gould

Bach의 Goldberg Variations 중에서 마지막 Aria Da Capo입니다. 연주는 Glenn Gould라는 캐나다의 피아니스트이구요. 이 사람은 일생 동안 Goldberg Variations가 담긴 두장의 앨범을 냈습니다. 그가 죽기 전까지 1955년 데뷔 레코딩으로 한 번, 1982년의 마지막 레코딩이 그것이죠. 얼마 전에는 캐나다 국영방송에서 연주했던 미공개음원이 음반으로 발매되기도 했습니다. 지독히도 연주회를 싫어해서 만년에는 레코딩에만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연주회에서의 실수를 두려워한다는 비아냥까지 들었지요. 하지만 글렌 굴드는 확고했습니다.


In a recording an artist can be encouraged to give a more immediately intense performance than he could under concert or theatre conditions.

나는 청중과 예술가라는 권력 질서에 반대한다. 청중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에 두는 것은 옳지 못하다. 말하자만 나는 맥루한 개념 같은 '창의적인 청중'이 필요하다. 콘서트는 청중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콘서트가 과거의 것이라면 레코딩은 미래의 것이다.

이렇게 말할 정도니까요. 20세기 초반의 클래식 연주자들은 레코딩에 관해 크게 두 종류의 반응을 가졌다고 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반기며 그 자체를 즐기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콘서트를 더 중시하고 일체의 레코딩을 남기지 않으려했던 사람들도 있었지요. 글렌 굴드는 대단한 레코딩 옹호자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굴드는 자신의 생애 첫 레코딩으로 바흐의 골드베르그를 선택했으며 마지막 녹음 또한 같은 곡이었습니다. 굴드가 유독 바흐와 자주 연결되는 것도 그런 이유지요. 그가 남긴 레코딩만 보더라도 바흐의 곡들이 꽤 많은 수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했던 음악가는 바흐보다는 다른 작곡가였다고 하죠. 그리그였나? . . ㅡ ㅡ;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아무튼 바흐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곡을 처음 알게된 건 아마 중학교 때였을 겁니다. 집에 클래식 음악을 해설해 놓은 책이 한권 있었는데 아쉽게도 집에 전축이나 레코드 판 같은 것이 없어서 책에 나온 곡들이 어떤 곡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죠. 그러다 우연히 동네 시장통 초입에 있는 레코드 점에서 책에서 보았던 바로 이곡을 본 겁니다. 그때야 작곡가도 잘 모르고 겨우 알파벳이 집에 있는 책에서 본 것과 비슷한 걸 산 거지요. 중학교 때 테입을 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 같은 앨범의 시디를 샀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인 키스 자렛을 비롯해서 꽤나 많은 연주가들이 이 곡을 연주했더군요. 집에도 안드레이 가브릴로프가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그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1955년도에 녹음한 골드베르그도 구해서 들어보았지요. 나중에는 캐나다 국영방송의 음원도 들어볼 참입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듣게 되는 건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그더군요. 고등학교 때도 마음이 복잡하면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나 이곡을 듣고는 했으니까요.

Bach, Fughettas and Fugues, Glenn Gould(Click to enlarge!)
* 위 사진은 97년에 소니에서 발매된 오리지날 자켓 컬렉션 중의 하나입니다. 케이스는 종이로 되어있고 디자인 또한 LP발매 당시와 동일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바흐의 다른 곡들이 그렇지만 이 곡도 대단히 지적인 곡입니다. 푸가 작법이라던가 평균율 클라비어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요. 1731년 <쳄발로 연습곡집>의 마지막에 '다양한 변주의 아리아'라는 이름으로 처음 발표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742년에 온전한 제목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으로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애초에 카이저링크 백작의 불면증 치료를 위해 바흐가 선물한 곡으로 많이 알려졌죠. 골드베르그는 카이저링크 백작을 위해 매일밤 이곡을 연주한 바흐의 제자 비르투오소 테오필루스 골트베르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네요.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의 콜럼비아 심포니와 글렌 굴드가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이나 레너드 로즈와 함께 연주한 비올라 다 감바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도 굉장히 좋은 곡이지만, 글쎄요. 역시 글렌 굴드가 연주한 이 골드베르크의 마지막 아리아는 뭐라 표현할 수가 없는 울림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 비디오의 마지막, 연주가 끝나고 속으로 깊이 웅크리는 듯한 굴드의 모습은 숙연함을 느끼게 하죠. 바흐의 곡을 연주한 다른 연주들이 곡의 지적이고 합리적인 질서를 강조한 연주라면 글렌 굴드의 연주는 그 질서 안에서 어떤 정서적 울림을 끄집어냅니다. 그래서 그 딱딱한 푸가곡마저도 굴드를 통과하면 또 다른 감정의 분출을 맛볼 수 있으니까요. 아직까지 글렌 굴드의 여러 연주를 즐겨듣는 건 그런 이유인가 봅니다.

*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솔라리스(Solaris, 2002)>를 보시면 혹성 탐사선에서 울려퍼지는 골드베르크 협주곡을 만날 수 있습니다.


캐나다 국립도서관의 글렌 굴드 홈페이지
소니 클래식의 글렌 굴드 공식 홈페이지

Posted by vizualizer at 10:27 PM | Comments (0) |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