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13, 2004

바퀴벌레

집에 또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지난 겨울 겨우 안 보이나 했더니, 봄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야 엄지 손가락 한 마디 같이 작은 녀석이지만 아마 여름에는 또 손바닥 만한 길이의 녀석이 나타날지 모르지.


바퀴벌레가 너무 싫은 이유는 녀석들이 내 눈앞에 녀석들의 끔찍한 모습 때문이 아니다. 녀석들이 끝내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비록 내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나의 집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왜 내가 사는 이곳은 50년 동안이나 바퀴벌레들이 끝없이 발목과 무릎을 타고 오르는 쓰레기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왜 사라진듯 썩은 음식 뒤에 숨어있다가 온 가족을 위한 따스한 밥상이 차려지면, 그래서 오랜동안 기다려온 아버지와 어머니와 누나와 형과 내 아이의 미소가 막 피어오를 참이면, 그 밥상 위를 기어올라 모든 것을 어지럽히는가.

왜 나는 내 밥상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가? 왜 50년이 묵은 바퀴는 등껍질에 썩은 똥칠을 금박인양 둘러대고 내 몸, 내집, 내 부모, 내 아이의 생살을 파먹으려 드는가.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Posted by vizualizer at 01:29 AM | Comments (0) | Trac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