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08, 2004

인연

샤워를 하다가 전화벨이 울렸다. 아마도 이모였을 텐데 젖은 몸으로 겨우 뛰쳐나가 집어든 수화기에서는 기계음만 들릴 뿐 사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샤워를 끝내고 겨우 몸을 닦으니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역시 이모다. 주말 저녁에 집에 전화를 할 사람은 이모 뿐이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라자냐 얘기가 나왔다. 나는 지금까지 라자냐를 먹어본 것이 한 다섯 번 뿐이다. 하지만 파스타보다는 더 취향에 맞아서 그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전부 다 누군가 사주었기 때문에 먹을 수 있었다. 혼자 생활하는 사람이 대부분 그러하듯 나도 스스로 먹을 음식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모는 굉장히 아쉬워하며 그 음식을 제일 잘 한다고 했다.

아마 13년 전 쯤이므로 이제 이모는 나의 모습을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다. 운이 좋아 공항에서 만나는 날이 있으면 나는 이모를 쉽게 알아볼 자신이 있지만 이모도 그럴 지는 알 수가 없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데,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중학생이었던 나는 영동대교 앞 137-1번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 오래 기다렸고 비는 아주 많이 왔다. 0교시는 자율학습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중학교 1학년이었으므로 딱히 공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너무 원통해서 엉엉 울어버렸다. 이렇게 오래 못 볼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아마 더 많이 울었거나 한번도 부린 적이 없는 생떼를 써서 공항까지 따라갔을 것이다.

이모는 휴가를 얻어 옐로우스톤Yellowstone으로 여행을 갔다고 한다. 열흘이 지났을 무렵에는 맡기고 온 강아지 Duke가 많이 아파 나흘 정도를 포기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단다. 이미 13년을 넘게 살았으므로 노년기에 접어들었는데 아무래도 가족들과 오래 떨어져 있는 것이 몸에 좋지 않았던 것이란다. 가족과 다시 만난 뒤로는 전과 다를 바 없는 노익장을 과시하지만. 이미 귀는 멀었고 시력도 나빠진 Duke는 나의 이종사촌인 Peter보다도 연장자이므로 자연스레 이모의 가족 구성은 누가 물어도 네식구가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네 사람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잠시 끊어진 전화를 놓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전화 뿐만이 아니라 급한 등기를 받지 못한다던가, 휴대폰으로 보낸 문자 메세지가 너무 늦게 오거나 중간에 사라지는 일도 생긴다. 하지만 전화 한 통, 편지 한 번도 모두 인연이다. 종이가 전파로 바뀌어도 그런 것은 변하지 않아서 매우 인간적인 것임에는 의심할 바가 없다. 죄송스럽게도 Duke덕에 짧아진 휴가 나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것은 때로 물리적인 거리가 되기도 하고 마음의 거리가 되기도 한다. 인연은 운명과 상통하므로 응당 마주쳐야 할 사람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 얼굴에 빛이 감돌지 않을까 한다. 반면 운명이 아닌 사람은 손바닥 크기의 한 하늘 아래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나의 티끌 같은 경험에 의한 이야기이므로 누구에게나 그러하다고 고집을 피우고 싶지는 않다.

더 오래 엄마를 만나지 못한 것은 나의 인연이다. 그리고 그런 누이를 임종하지 못 한 것 또한 이모의 인연이라 믿는다. 딱 고맘 때에 팔을 다친 Peter도 나름의 인연이겠지. 이모도 사람이라 언젠가는 연(緣)을 달리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한 번도 마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나의 노력에도 한계가 있고 명은 사람의 뜻을 가벼이 여기는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슴이 아린 것은 이모가 그리되면 나에게는 정말 가족이라 말할 이가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제도 이모는 결혼을 종용했다. 나는 필히 장가를 가야한다는 것이다. 쉰을 바라보는 이모도 이제는 어른인지라 무거운 말을 가끔 들려준다. 천성적으로 그릇이 작은 나는 어떤 좋고 맑은 사람이 나 같은 이를 좋아할까 의심 뿐이다. 좋고 맑기 때문에, 착하기 때문에 나를 좋아할 수도 있고 그 반대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직접 만든 라자냐를 먹는 것이 나의 바램이지만 그것 또한 인연에 달려있으므로 어찌 될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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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법 Trigonometric

원근법의 완성은 플로렌스 사람인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에 의해 완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저서 <회화론>을 통해 소실점을 가지는 근대적 의미의 원근법을 완성한 사람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원근법에 대한 논의는 많이 있었으며 기술적으로는 이미 1425년에 필리포 브루넬레스키(Pllipo Brunelleschi)에 의해 행해진 실험을 통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를 저작으로 드러낸 것이 알베르티라는 것이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1435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프랑코인인 레기오몬타누스(Legiomontanus, Johann Müller, 1436~1476)는 인도의 수학자들이 그리스 수학을 통해 발전시킨 구면 삼각법을 유럽에 소개한 인물로 유명하다. 당대의 유명한 수학자들은 천문학자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구면 삼각법을 통해 천체의 운동을 이해하려 한 때문이었다. 현대적 의미에서처럼 해석학적인 주기함수로 삼각법을 이해하는 것은 조금 더 후대의 프랑스인인 프랑수아 비에트(François Viète, 1540~1603)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1471년 레기오몬타누스는 에르푸르트 대학의 교수 크리스티안 로더(Christian Roder)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래와 같은 문제를 제시했다고 한다.

공중에 수직으로 길게 매달린 막대기는 땅 위의 어떤 지점에서 바라보아야 가장 길게 보이는가?

이 문제는 수학적으로 원에 내접하는 직각 삼각형의 현에 대해 최대값을 묻는 문제이다.

위의 두 문단은 상직적으로 별다른 관련이 없어보인다. 알베르티의 이야기는 주은우가 쓴 <시각의 현대성>이라는 책에서 원근법과 관련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그 아래의 내용은 엘리 마오(Eli Maor)가 저술한 <사인, 코사인의 즐거움, Trigonometric delight>이라는 책에서 레기오몬타누스 소개글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글을 역시 요약, 발췌한 것이다. 엘리 마오는 레기오몬티누스의 위와 같은 정리를 인용하면서 역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레기오몬티누스의 구면삼각법 문제가 당대에 발견되었던 원근법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을 내놓는다.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겠지만 알베르티의 <회화론>은 레기오몬타누스의 최대값 문제보다 약 30년 앞서 발간되었다. 그가 당대의 유명한 인문학자이자 건축가였음을 상기한다면 레기오몬타누스가 알베르티에 대해 전혀 무지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두 사람이 서로의 의견에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인가라는 의문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다만 재미있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연구가 실은 몇 가지 공통되는 형이상학적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원근법은 잘 알다시피 두 가지 중요한 철학적 개념을 전제로 한다. 이는 주체와 무한이다. 소실점을 전제로 모든 화면의 시작적 배치, 기하학적 성격을 규정하는 원근법은 명백히 근대적 주체의 출현을 예고하는 혹은 반증하는 좋은 본보기이다. 동시에 원근법은 소실점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는 수학적으로 무한의 개념과 맞닿아 있다. 미분과 적분에서 최초로 사용된 무한소의 개념 또한 결국 무한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경우인데 이진경의 지적처럼 당대의 인문주의를 괴롭히는 매우 악마적 개념이었다고 한다.

레기오몬티누스의 최대값 문제는 당시 천문학적 적용에 머물러 있던 삼각법의 응용을 땅 아래의 건축물에 적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삼각법의 최초 활용은 대개 이집트의 상형문자에서 발견되는 린트 파피루스에서 찾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피라미드의 축조와 관련하여 사각뿔의 네 빗면의 기울기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직각삼각형과 그 사잇각이 이루는 비례에 대해 tan와 유사한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원시삼각법이라고 칭하는 이 방법은 후에 그리스 수학자들에 의해 천문학적 도구로 사용되었는데 레기오몬티누스의 정리는 이러한 방법을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린 셈이 된다. 이러한 삼각법은 이탈리아 사람 카시니(César François Cassini, 1714~1784)와 그의 아들들에 의해 삼각측량으로 발전되는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프랑스와 영국의 식민지 전쟁에서 이루어졌던 측지술의 발전에 초석이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레기오몬타누스의 최대값 문제는 지상의 측량대상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수리적 기초를 제공한 셈이 된다.

알베르티의 회화론에 무한의 개념은 후에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의해 발견되는 미적분에서의 무한소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미적분은 모든 물리적 운동에서 운동량의 측정을 가능하게 하여 자연과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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